서론
[대위의 딸]... 제목만으로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뿌가초프의 반란 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읽기 전에 마음의 자세가 바뀌게 된다. 러시아 역사 속에서 뿌가초프의 반란 이 차지하는 위상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생각도 책을 읽어가면서 다시 깨지고 만다. 뿌쉬낀의 [대위의 딸]이 표방하는 외면적인 영역은 역사소설이 아니라 연애소설·가정소설이기 때문이다.
뿌가초프의 반란(1773∼1775년) 은 예까쩨리나 치세에 일어난 러시아 최대의 농민반란이다. 계몽군주임을 자처하는 예까쩨리나가 실제로 도입한 제도와 정책은 귀족들과 황실을 위한 것이었으며, 농노와 농민, 자치권을 읽은 까자흐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참혹했다. 반란은 1775년 지도자 예멜리얀 뿌가초프가 처형되면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 반란에 충격을 받은 정부는 그 해 지방제도를 개혁했다. 역사책마다 입장을 달리해서 이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것만 보더라도 대단히 민감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니꼴라이 1세의 반동정치 하에서 뿌쉬낀이 당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순간을 감히 어떻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반란에 대한 뿌쉬낀의 생각이 지배층의 그것과 일치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그러나 뿌쉬낀이 쓴 순수한 역사물인 「뿌가초프 반란사」는 원래 제목이 「뿌가초프의 역사」이었고 그의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역사에 대한 관점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은 감안한다면, 그의 선택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론
1. 은밀한 아이러니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일을 현재에 기록하는 영역이므로, 결코 동시대와 분리를 하여 생각할 수 없다. 뿌쉬낀이 지나간 역사에서 뿌가초프의 반란 을 선택한 것도 또한 동시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동시대에 대한 생각이 다음과 같은 부분에 교묘하게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