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에서 근본적인 사회변혁이 필요하리라는 신념은 곧 과격한 혁명이나 권력의 장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공상적 社會主義학파 지도자들의 결론이 아니라 공산주의 및 바뵈푸적 전통과 연결된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온건한 社會主義者들까지도 1830년의 혁명과 그에 이은 7월 왕국에 크게 실망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社會主義공화국(la république sociale), 즉 사회문제의 해결에 전념할 쟈코뱅적 공화국을 동경했다.
英國에서는 1830년대와 1840년대의 크나큰 불안상태에도 불구하고, 왕국과 의회를 붕괴시킬만한 혁명적 동란은 프랑스에서처럼 그렇게 광범하고 지속적인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2. 프랑스의 제2혁명
프랑스에서는 1789-99년 혁명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고, 1793-94년의 社會主義공화국의 시초모델은 그 공화국을 부활․완성시킬 수 있는 “제2혁명”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다. 1820년대, 1830년대, 그리고 1840년대는 프랑스와 대륙의 여타 지역에서 노동계급의 수많은 봉기가 있었다. 1840년대에 이르면 프랑스에서는 社會主義이론과 노동계급의 행동주의의 결합만이 아니라 그 양자와 혁명적 사회분위기-1章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정치적 혁명의 세속적 구제 즉 인간 조건의 전면적 변혁을 가져온다는 신비적 감정-와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1848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