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奚琴)은 중국 호금(胡琴)류의 악기의 시조이다. 북송시대부터는 ‘마미호금(馬尾胡琴)’과 ‘호금(胡琴)’이라는 명칭이 해금이라는 명칭과 병존해왔다. 중국에서 호금(胡琴)이라 하면 ‘야만인의 악기’ 라는 뜻인데 역사적 변천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왔다. 원대(A.D 1280~1368) 이전에는 활이나 술대로 연주했던 찰현악기 또는 발현악기로, 또는 중국 고유의 악기가 아니라 터키몽고문화에서 온 외래 악기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후에는 오직 찰현악기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서 특히 활로 긁어 연주하는 악기를 ‘호금’이라고 불렀다.
2. 중국 해금의 역사
송대에 들어서야 최초로 해금에 대한 기록이 많아지고 상세해진다. 이때 사료에서는 해금을 계금, 혜금이라고도 쓰였다. 최초의 기록은 [악서(樂書)]에 나온 진양의 글로 ‘해금은 본래 호악이다. 현도에서 나왔는데 그 사이를 대나무 막대기로 문지르는 것인데 지금 민간에 존재한다.’ 고 하였다. 현도기원설과 같이 도(鼗)가 변화, 발전하여 해금이 된 과정을 정리하면:도고위에 현을 맨 후에 현도(탄현악기)를 만들었는데 이후에 문지르는 쟁(箏)의 개발을 수용하여 대나무 막대기로 그것을 문지르니 찰현악기인 해금이 되었다. 중간에 뜯는 주법과 문지르는 주법이 병존하는 시기를 거치는데 이러한 현상은 현재 운남(雲南)의 합니족의 삼현(三絃)에서 아직도 나타나고 있다. 삼현(三絃)은 뜯개를 이용하여 연주할 때는 ‘당적’이라고 하고 말총활을 이용하여 문질러 연주할 때는 ‘감길’이라고 불린다. 이 시대에는 궁정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계금이 크게 유행하였다.
원나라 시대에는 해금과 형태와 제도가 같지 않은 호금(‘홀올인’과 ‘초올인’)이 등장하였다. 몽고인이 만들어낸 찰현악기로 울림통의 모양은 거꾸로된 사다리꼴이고 양면에는 몽고양의 가죽을 쓰고 두 줄은 균등하게 하나의 말총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