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가 불량배들에게 돈이나 금품을 갈취당하는 친구나 동생을 목격하고 있다면 어떡해야 할까. 그냥 모른척 하고 지나쳐가야 할까, 용기를 내서 구해줘야 할까. 내가 구하려는 이유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보아서인가 내가 구해준 것에 대한 어떠한 보상을 바래서 인가. 괴롭히던 불량배들은 죽어 마땅한 걸까.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과 같은 맥락인것 같다.
저자 이매뉴얼 윌러스틴은 인류의 꽤 오래된, 그러나 너무나 편파적으로 쉽게 결정되버린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도와주는게 정말 사심없는 행동인가. 그리고 이러한 물음의 기원은 꽤나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열강들의 패권주의가 난무하고 식민지열풍이 불던 때 강대국들은 식민지화에 대한 정당한 명분을 만들려 노력한다. 이런저런 종교적, 윤리적인 명분들을 갖다 세우며 식민지화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더욱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한다. 식민지가 된 국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도 절대 공감하기 힘든 명분일 테지만 약소국들의 입장은 강대국 앞에서 별다른 효력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식민지화를 추진하는 강대국 내부에서 이러한 명분에 의심을 품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커지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식민지화 시키는 r것이 식민지들을 위한 행동인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역시나 국가의 이익에 관여된 사업이나 일들에 의심을 품거나 반하는 이들은 마치 오늘날 무조건 종북이라 비난받듯이 내지는 매국노라고 비난받았음이 당연하다. 그런데 과거 에스빠냐가 잉카제국 내지는 인디오들을 지배하였을 당시 라스 까싸스라는 인물이 가진 의심과 반감은 나름대로 정당하고 공평한 판단과 토론과정을 거칠 기회를 갖게 된다. 그와 상반되는 의견, 즉 식민지화는 필수 불가결이라는 견해를 가진자는 그 당시의 대부분의 자들이었겠지만 쎄뿔빼다라는 인물이 까싸스와의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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