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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도성과 지방통치 관련 논문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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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5경 설치와 도성
Ⅱ. 도성의 범위와 위상
Ⅲ. 천도와 지방통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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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영역 확장과 그밖에 여러 대내외적인 요인에 의해 4차례에 걸쳐 천도를 했다고 한다. 발해 도성은 건국과 천도 과정에서 조성되었고, 구국, 중경, 상경, 그리고 동경에 있었다. 그 지역은 무왕 대에 확대된 영역 안에 있었다. 무왕 재위 당시(726)에 당이 흑수말갈 지역에 흑수부를 설치하자 무왕은 흑수 토벌을 강행하고, 이에 반대하던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였다. 망명한 대문예 문제를 가지고 발해와 당 사이에 국서가 2차례가 왕래하는 교섭이 있었다. 732년에 발해 수군이 당의 등주를 공격하고 신라가 발해 남부를 공격하였다. 이시기 발해는 일본에 국서를 보내 고구려 계승을 천명한다. 김동우는 위의 사건과『무경총요』기록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발해가 중경으로 천도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후 발해는 천보 말에 중경에서 상경으로, 정원(785~801) 연간에 상경에서 동경으로 천도했다가 문왕이 죽은 후 5대 성왕(재위 793~794)이 다시 상경으로 옮겼다. 천도 과정 중에 조성된 각 도성과 서경과 남경을 합한 5경은 『신당서』 발해전에 “땅은 5경, 15부, 62주이다”라 했듯이 부-주-현의 지방통치체제와 짝을 이룬다. 발해 5경은 15부와 62주 앞에 나오는 실질적인 지방 행정 기관이었다. 그렇다면 설치시기는 발해 지방통치체제 구축과 정비를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類聚國史(유취국사)』193, 796조의 발해 연혁 기사와 일본은 신귀 5년(728)에 온 발해사신(도독과 자사 파견)의 기록을 볼 때, 발해 지방관인 도독과 자사는 발해의 영토 확장에 따라 일찍부터 설치되었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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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2017, 발해 도성과 지방통치, 高句麗渤海硏究 第58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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