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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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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이란 1230년대 문헌에 무젤로에서 내려왔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는 이 가문의 그 무수한 업적을 한문장으로 요약하여 말하자면 15세기부터 이후 삼백년간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가문으로, 문화와 예술, 과학 등을 폭넓게 후원하며 수많은 천재 예술가와 사상가, 학자를 발굴하여 예술 발달의 토대를 다진, 인류 역사상 문화예술에 가장 크게 기여한 가문이라고 한다.
메디치 가문은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결코 배반하지 않으며, 죽더라도 신의를 다한다 라는 신념을 가진 역대 바티칸 교황들의 거래 은행으로써 두명의 교황(레오 10세와 클레멘트 7세)과 두명의 프랑스 왕비(카테리나 디 메디치, 마리아 디 메디치)를 배출했다.
정말로 피렌체와 가문의 전성기를 함께하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가문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출발은 미미했다. 조반니 디 비치(1360∼1429)가 1395년 삼촌에게서 로마은행을 인수해 문을 연 메디치 은행은 별 볼일 없는 후발업체로 오늘날 지방 은행이나 저축은행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지기스문트 황제에 의해 3명의 교황이 강제폐위 및 체포되면서 오갈 데 없게 된 요한 23세의 보석금을 전액 융자해주고 거처와 생활비를 지원하게 된 계기로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이 된다. 이후 교황은 물론이고 유럽의 왕가와 명문 귀족들은 메디치가가 보여준 신의에 감동하여 예금과 비자금을 맡김으로써 메디치가는 막대한 부를 쌓아갔으며 정계에도 진출하게 된다. 조반니 디 비치는 정치적으로 귀족들에게 유리한 세금 제도를 철폐하고 평민들의 입장을 옹호하며 상당한 돈을 공화국에 기부하여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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