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사랑과 민족 정신
1. 주시경의 우리말 사랑
이 글은 국어 학자인 주시경의 국어 연구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성되었다.
주시경은 1876년 홍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1914년에 이승을 떠났다. 그의 어릴 때 이름은 상호였으며, 호는 한힌샘, 白泉, 太白山 등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에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고 남들처럼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후에 배재 학당에 들어가 영어를 익혔으며, 만국 지리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국어를 연구하는 중에도 항해술과 측량술을 학습했으며, 역사학, 물리학, 수학 등에도 손댈 정도로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남달랐다.
그가 우리 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열 다섯 살부터였다. 그는 우리 말의 토인 ‘와’와 ‘과’가 왜 구별되어 쓰이는가에 관심을 갖으면서 국어와 국문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또한 주시경은 어려운 한문 대신에 국문을 쓸 것을 생각하고, 국문의 자음을 분석하고 모음을 세심히 갈라 놓았다. 스물한 살 때는 독립 신문을 만들고 ‘국문 동식회’를 조직해 맞춤법의 정리에 손을 대었고, 문법 연구와 사전 편찬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열 여덟 살부터 ‘국어 문법’이란 책을 짓기 시작해 스물 세 살 때 이를 완성하였다.
1906년 주시경은 ‘대한 국어 문법’을 통해 말과 을 갈고 닦아 널리 알리는 것이 독립 자존의 길임을 강조하고, 1907년부터는 ‘국문 연구소’의 주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문 연구’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보성, 이화, 휘문, 중앙 학교에서 국어 및 여러 과목을 가르쳤고, ‘하기 국어 강습소’를 열었다. 1908년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국어 단체인 ‘국어 연구 학회’를 창립하고, 그 안에 ‘국어 강습소’를 두어 연구와 교육이 병행되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한글모’라는 조선 어문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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