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기묘 음 7.12)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 한응준의 차남으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온양 박씨 이며 본관은 청주, 본명은 정옥, 아명은 유천, 출가해서 득도할 때의 계명이 봉완,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로 되어있다. 고향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때 『서상기』를 독파하고 『통감』,『서경』을 통달한 천재라고 하였다.1892년 천안 전씨를 아내로 맞고 서당 선생이 되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
1897년 의병의 실패로 몸을 피해 고향을 떠나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 법주사, 연해주 등지를 전전 하다가 1904년 고향인 홍성으로 와서 수개월간 머물렀다. 그해 12월 21일 맏아들 보국을 얻는다. 1905년 1월 26일 백담사 김련속에게 득도, 전영제(영제선사)에 의하여 수계하고, 4월에 『기신론』,『능엄경』,『원각경』등을 수료하였다.
1908년 4월 일본 경도, 동경 등지를 여행하면서 신문물을 배우고 동경의 조동종 대학(현재 구택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고 10월에 귀국한다.
1912년 불교 경전을 대중화 하기 위하여 『불교대전』을 편찬하려고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는 고려대장경1,511부 6,802권을 열람하였고, 1913년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 박한영, 장금봉 등과 불교 종무원을 창설 하였고, 5월 19일 통도사 불교강사에 취임하였다. 1918년 9월 서울에서 월간 교양지《유심》을 창간하여 편집․발행인이 되어 12월까지 3호를 발행 하였다.
1919년 1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과 관련하여 현상윤 등과 조선독립을 의논 하고 3․1운동의 주동자로서 손병희를 포섭, 최남선이 작성한 조선독립선언서의 자구수정을 하고 공약 3장을 첨가하고, 3월1일 명월관 지점에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하고 투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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