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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의 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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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의 성문화
조선사회는 축첩제, 기생제를 근간으로 양반 남성이 성적 욕망을 한껏 충족시킨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였다. 양반 가문에선 간통, 강간이 횡행했다.
특히 조선시대엔 많은 여성이 기생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기생제도는 양반 남성이 피지배 계층 여성을 마음대로 취하는 통로였다.
어우동이란 여인이 있다. 잘 알려진 사람이다(‘왕조실록’에는 ‘어을우동’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어우동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다. 조선시대 최대의 성적 스캔들을 일으킨 여인으로, 이 여인의 거침없는 남성편력, 성적 욕망의 표출은 자못 현대인의 관심을 끌었다. 어우동을 테마로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든 작가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성적 억압이 강고했던 중세사회에서 한 여인이 성적 자유를 구가했다면 근대화의 단초가 되는 행동이 아닌가’라고. 이건 그럴 법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어우동을 돌출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뒤집어보면 어우동과 관계를 맺은 남성들이 없다면 어우동 역시 없다. 조선시대 지배층인 양반들은 성리학이란 도덕철학으로 무장한 도덕적인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어우동의 존재는 양반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에 오류가 있음을 암시한다.
조선시대는 축첩제가 공인되었으나 여성의 투기는 칠거지악으로 금기시되었다. 축첩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였다. 그런가 하면 기생제도도 존재했다. 조선시대 남성에게 성적 스캔들은 제도화,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축첩제는 커녕 남편 아닌 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철저하게 응징되었다. 불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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