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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냉전의 종식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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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종식원인
Ⅰ. 서론
1985년 3월 고르바초프의 권력획득은 그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성인이 된첫 번째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그는 스탈린 시기를 경험한 바가 거의 없었고 그것은 전임자들보다 스탈린의 마인드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 브레즈네프독트린으로 유명한 브레즈네프가 198년 사망하자 이후 차례로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턴틴 체르넨코가 임명되었고 이들은 각각 1년이내에 사망하게 된다. 고르바초프는 그의 권력기반이 변화 옹호론자에 있었고 앞서 말한 이들의 죽음은 보수파의 죽음을 의미하였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추진하였는데 그의 목적은 소련의 붕괴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소련의 붕괴는 장기적 원인과 단기적 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Ⅱ. 장기적 원인
장기적 원인은 주로 경제적인 문제였다. 융통성없는 중앙계획에 의존하고, 생산성 보다는 상품의 총생산량을 중시하고, 경영혁신과 생산기술혁신을 저해하는 명령경제체제 내에서는 내재적으로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비록 스탈린 시대의 1940년대까지는 미국이나 서방세계보다 성장률이 더 높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소련경제는 중공업제품 및 군사장비의 생산과 같은 특정영역에서는 잘 작동하였기 때문에 생존은 경제적으로는 가능하였다. 또한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상당량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에 의한 규율과 억압이 반체제자들을 묶는데 기여하였고 전시에 타국정부들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희생의 유리를 강조할 수 있었다. 즉 소련의 경제는 전시경제인 셈이었다. 또한 1970년대 후반의 농산물 생산량 감소는 사망률과 유아사망을 증가시켰고 국민의 건강은 후퇴하였다.
Ⅲ. 단기적인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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