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들 실학하면 대개 다산 정약용 선생을 떠올린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이 평생을 스승으로 삼고 존경을 표했던 사람이 성호 이익 선생이었다. 이익 선생은 둘째 형 이잠이 노론 집권당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장살당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기를 단념하고 평생을 시골에 묻혀 살며 학문 연구에 몰두 하신 분이다. 스스로가 과거제도의 희생양에다 당쟁의 피해자였지만, 현실을 탓하기 보다는 대신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개혁론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사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분이다.
이런 이익 선생의 저서 성호사설을 읽으면서, 나는 당시 조선사회가 직면했던 사회 문제와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가치 있게 여겨지는 고전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분배의 문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 학문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방식 등등 어느 하나 우리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주로 현대 우리 사회의 문제와 상통하는 부문을 주의 깊게 읽었는데 그 중에 나에게 큰 감동을 준 이야기를 끌어와 내 생각을 적고자 한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릴 권리를 가졌으니, 사방을 잘 다스리고 천자를 도와서 백성으로 하여금 혼미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했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모든 백성을 자식같이 기르려면 어찌 가볍거나 무겁게 또는 멀거나 가까운 구별을 용납하겠는가. 그러므로 백성 부리기를 마땅히 고르게 해야한다. 참으로 한쪽은 수고롭히고 한쪽은 편하게 한다면, 비록 아버지가 자식들에 대해서라도 그 원망함을 금지할 수 없는데, 더구나 나라의 많은 백성에 있어서랴. 고르게 부리려면 먼저 명목이 번거롭지 않아야 한다. 명목이 같으면 부림이 고르게 되고 부림이 고르게 된 뒤라야 원망이 없다. [군역의 다섯가지 불평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