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는 자신의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애매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그는 기독교의 신앙이 나사렛 예수의 실제 삶과 죽음 위에 세워져 있다고 주장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의 개념은 아무런 객관적인 지식 위에 세워져 있지 않고 역사적 인물 예수와 관련도 없다. 틸리히는 오로지 역사의 실존적인 의미 관심이 있다. 보편역사 (Historie)가 아닌 초 역사에(Geschichte) (The Futu re of Religions,P.33). 그에 의하면 신앙은 궁극적 관심으로 갖는 상태이다. 신앙은 생의 궁극적인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궁극적인 관심이 경험될 때마다 거기에는 신성이 존재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의심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이 궁극적인 관심이 우리의 실존적인 존재 또는 비존재 를 결정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한정적인 좋은 것 그 무엇과도 구분되는 것이다. 궁극적이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상 숭배이다. 그리스도 그 결과 는 실존적 절망 을 뿐이다.
틸리히가 보기에 신앙은 어떤 진리 또는 교리에 의식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른 사고의 방법이나 지성의 희생이나 교회나 성경의 교리같은 괴상한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 도달할 수는 없다. (ST,1:14).이런 것들은 주변적인 것이지 궁극적인 관심은 아니다. 그렇다면 궁극적 관심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이렇게 묻는 것은 오히려 궁극적인 문제를 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에 대답은 분명치 않다. 어쨌든 그는 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여하간에 대답은 분명치 않다. 어째든 그는 사람은 직접 개인적이고 중심적인 행동 속에서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 게 된다. (The Protestant Era,xv)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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