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광복 후 미군정의 영향 속에서 경제 정치의 태동을 겪게 된다. 여기에서는 해방 후 1945-1948년에 이르는 미군정의 한국에서의 경제적 방향과 그 경제 정치적 방향이 한국 내의 일본 세력과 독립운동가등 민족주의 세력 등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2. 미군정의 정치 경제적 정책 방향
먼저 해방 후 한국에 있어서의 미군정의 의도 정책들을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분단된 한국의 상황에 대한 인식 위에서는 한 미군정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조로서 부르스 커밍스와 고바야시 히에오의 견해를 들어보면 한국의 독립과 자결은 한국의 이익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것 즉 독립과 자결은 미국 이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 항상 고려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이익에 동조적인 한국을 창설하는 것이 한국의 자결보다 중요하다는 미국의 의도이고 한국은 미국인에게 있어서 아시아에서의 우리의 전체적인 성공이 달려 있는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이자 문명의 시험장이고 인류의 운명이 심사되고 있는 경기장인 환상적인 건축물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고바야시는 군정기의 경제정책을 경제의 일반적 상황 민족경제의 파탄의 재편성이라는 소제목하에서 평가하고 있다. 우선 해방 전 조성되어 온 식민지 반봉건적 군수산업 주도의 대일 의존적인 무역 구조는 해방후의 대미의존으로의 전환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면화생산 동향이다. 또한 한국의 미국 상품 시장으로의 전환을 촉진시켜 그 뒤의 한국자본 축적기반 형성의 준비를 한 것은 군정청에 의한 구 일본인 재산의 접수와 남한 산업의 기술부문에 대한 통제 관리이다.